나이들수록 내 안에서는 객관화따위 필요없다고, 애초에 인간은 주관적인 동물이라 그럴 필요없다고 유혹하는데
그걸 이겨내는 것, 즉 타자의 시점으로 나를 본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여기 배달하는 친구도 있는거 같던데, 그친구가 이런저런 글을 쓰면 나도 배달하던 30대 중반 때가 생각나서 마음이 뭉클하다.
요즘에는 거의 보기 힘들지만, 유흥가에서 볼 수 있었던, 아주머니들이 했던, 쟁반들고 걸어서 하는 음식배달을 1년동안 했었다.
유흥가다보니, 주로 술집이나 노래방, 성인오락실이 주 고객층이었는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적어볼까 한다.
오피스텔에 배달을 갔고, 20대 중반의 일진스러운 여자가 음식을 받았어. 그리고 보통 다먹으면 문 앞에 쟁반을 내놓지.
30분정도 있다가 쟁반을 수거하러 다시 갔는데, 쟁반이 없었어. 다시 30분 뒤에 갔는데, 그때도 없길래 까먹었나싶어서 노크를 하고, 직접 쟁반을 받았지.
역시나 까먹었다 하더라고.
근데, 쟁반을 내게 넘긴 그 여자가 "아, 잠깐만요" 하면서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쟁반에, 그것도 먹다 남긴 밥그릇속 흰 밥 사이에 꽁초를 기어이 쑤셔넣는거야.
난 가만히 서서 쟁반을 든 상태로 그여자가 하는 행위를 바라보기만 했고, 감사합니다 하고 가게로 돌아왔지.
가게 사장인 어머님이 밥사이 꽂혀있는 꽁초보고 기분 나빠 할까봐, 돌아오는 길에 버렸어.
그 순간에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안에서 뭔가 선명해지는게 있었어.
20, 30대의 내 자만과 교만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고, 그 여자가 했던 행동들이 내가 과거에 남들에게 했던 행동들이었겠구나.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기분이, 그때 나를 대하던 사람들의 느낌이었겠구나 했지.
별건 없지만, 연대 석사출신에 그냥 저냥 평범한 회사를 다니면서 살아오던 내가 쟁반을 1년동안 들면서 내 그릇을 많이 비울 수 있게 된 것 같아.
알량한 자존심과 이기적인 마음을 최소화하는데 1년이나 걸린거지. 사실 그 이전부터 무너져내리고 있긴 했지만..
여튼 덕분에 난 울집에 배달오는 친구들 있으면 초인종 누르기 전에 문열고 맞이해주고, 인사 명확하게 해주게 되더라.
결론은.. 내가 당해보면 알게 된다는거지.. 타인의 마음을..